강희탁 컴닥터 대표강희탁 컴닥터 대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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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탁 컴닥터 대표강희탁 컴닥터 대표가 지난 1일 서울 용산 본사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컴퓨터 출장수리·IT 유지보수 브랜드 ‘컴닥터’의 강희탁 대표는 자신을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2004년 컴퓨터 수리업으로 창업한 그는 한때 빚이 20억원대까지 불어나는 위기를 겪었다. 사업 실패로 집은 압류됐고 가족과도 떨어져 지내야 했다. 그는 서울의 한 고시원 한 평 남짓한 방에서 11년간 버티면서 회사를 다시 일으켰다. 강 대표는 지난 1일 서울 용산구 본사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 시간을 지나며 하나님을 다시 찾게 됐다”며 “사업 재기보다 하나님을 다시 찾았으니 이제는 천국 삶”이라고 웃었다.그는 모태신앙인이다. 어린 시절 서울 용산구 후암제일교회를 다녔다. 특히 외가 식구들이 독실했다. 외할머니는 생전 동대문교회에 다니며 매일 새벽기도를 드렸다. 어머니는 어린 시절 소아마비로 2급 장애를 겪었지만 남편까지 일찍 잃은 뒤에도 신앙을 붙들고 살아왔다.아버지는 그가 한 살 때 세상을 떠났다. 그는 친척 집에 얹혀살며 옷을 얻어 입고 자랐다. 용돈을 받아본 기억도 없었다. 가난은 그를 일찍 일터로 내몰았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신문 배달을 했다. 중·고교와 대학, 직장생활 중에도 배달 일을 놓지 않았다. 첫 월급은 75만원이었다. 친척 집에 생활비를 내고 나니 남는 돈이 거의 없었다. 그는 “이대로는 평생 결혼도 못 하고 가난하게 살다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강 대표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신문과 우유 배달을 병행했다. 회식이 새벽 2시에 끝나도 새벽 4시에는 배달을 나가야 했다. ‘한 시간이라도 잘 수 있으니 다행이다’고 생각했다. 겨울에는 돈을 아끼려 오토바이용 방한 장갑 대신 목장갑 두 켤레를 끼고 배달했다. 손이 너무 시리면 길가에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엔진에 손을 녹였다. 직장에는 도시락을 싸서 다녔다. 식당 밥값도 아까웠다. 그렇게 5년간 모은 5000만원이 창업 자금이 됐다.창업 초기 회사 이름은 ‘컴퓨터24시’였다. “밤이든 새벽이든 고객이 부르면 가겠다”는 뜻이었다. 그는 배달용 오토바이에 컴강희탁 컴닥터 대표강희탁 컴닥터 대표가 지난 1일 서울 용산 본사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컴퓨터 출장수리·IT 유지보수 브랜드 ‘컴닥터’의 강희탁 대표는 자신을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2004년 컴퓨터 수리업으로 창업한 그는 한때 빚이 20억원대까지 불어나는 위기를 겪었다. 사업 실패로 집은 압류됐고 가족과도 떨어져 지내야 했다. 그는 서울의 한 고시원 한 평 남짓한 방에서 11년간 버티면서 회사를 다시 일으켰다. 강 대표는 지난 1일 서울 용산구 본사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 시간을 지나며 하나님을 다시 찾게 됐다”며 “사업 재기보다 하나님을 다시 찾았으니 이제는 천국 삶”이라고 웃었다.그는 모태신앙인이다. 어린 시절 서울 용산구 후암제일교회를 다녔다. 특히 외가 식구들이 독실했다. 외할머니는 생전 동대문교회에 다니며 매일 새벽기도를 드렸다. 어머니는 어린 시절 소아마비로 2급 장애를 겪었지만 남편까지 일찍 잃은 뒤에도 신앙을 붙들고 살아왔다.아버지는 그가 한 살 때 세상을 떠났다. 그는 친척 집에 얹혀살며 옷을 얻어 입고 자랐다. 용돈을 받아본 기억도 없었다. 가난은 그를 일찍 일터로 내몰았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신문 배달을 했다. 중·고교와 대학, 직장생활 중에도 배달 일을 놓지 않았다. 첫 월급은 75만원이었다. 친척 집에 생활비를 내고 나니 남는 돈이 거의 없었다. 그는 “이대로는 평생 결혼도 못 하고 가난하게 살다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강 대표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신문과 우유 배달을 병행했다. 회식이 새벽 2시에 끝나도 새벽 4시에는 배달을 나가야 했다. ‘한 시간이라도 잘 수 있으니 다행이다’고 생각했다. 겨울에는 돈을 아끼려 오토바이용 방한 장갑 대신 목장갑 두 켤레를 끼고 배달했다. 손이 너무 시리면 길가에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엔진에 손을 녹였다. 직장에는 도시락을 싸서 다녔다. 식당 밥값도 아까웠다. 그렇게 5년간 모은 5000만원이 창업 자금이 됐다.창업 초기 회사 이름은 ‘컴퓨터24시’였다. “밤이든 새벽이든 고객이 부르면 가겠다”는 뜻이었다. 그는 배달용 오토바이에 컴퓨터 본체와 모니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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